고성에게 전화가 왔다. 윌리암스버그라고 했다.
어제 연락왔을 때도 만나지 못했는데 꾸준히 연락 주는 고마운 친구다.
"기다려, 점심이나 먹자"
가장 만만한 타이식당에서 카레치킨을 먹었다.
사진 몇 장을 내밀었다. "이것 스캔해줄 수 있겠어?"
벌써 1년 반전에 찍은 이정진 선생의 사진이다.
프린트만 해놓은채 스캔을 하지 못해 가지고만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 Verb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켰다.
창가에 앉아 이야기 하는데 옆에 앉은 남자가 재채기를 한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뉴스도 보지않는 고성은 플루에 대한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일련의 뉴욕타임즈 기사를 재편해 들려준다.
"Swine
flu는 손으로 눈, 코, 입을 만지면 안되고,
병에 걸리면 이틀 이내에 약을 먹어야한단다.
안그러면 폐렴 등 합병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니
결국
시간이 key인 셈이지"
"허허..큰일인데요"
예전에도 한 번 든 생각이지만 고성에게는 참 애늙은이 같은 느긋함이 있다.
커피를 들고나와 North 7th St. 부근의
어느 의자에 앉는다.
"오늘 참 멋진 날씨다"
거무죽죽한 하늘에 바람부는 날이었으니 고성이가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본다.
"나는 이런 날이 좋다"
대기속에 습기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불어 상쾌하다.
그것은 오래전 만난 자유를 연상시켜주곤한다.
글에 대하여, 사진에 대하여 궁금한
점이 많은지 물어보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해주니 종이를 꺼내어 열심히
적는다.
MFA를 준비하는 대학원생답게 기특해 보인다.
“요즘엔 집에서 自己愛에 대한 사진을
찍고 있어요. 롱샷에 몸을 움직이면서 말이죠”
“키아누 리브스가 총알피하는 것 처럼 말이지?”
“어쩌면 비슷할지도 모르겠어요”, 고성이가 웃으며 대답한다.
베드포드를 따라 걸어내려와 맥카렌 파크로 들어섰다.
빨간옷의 야구부 애들이 연습하고 있다.
재들은 언제나 이 곳에서 연습한다.
왜, 무엇때문에.
천천히 걷다 공원의 끝에 다다르자 양 끝 다른 방향으로 문이 두 개 나 있다.
"자기는 저쪽으로 가서 61번 타고 가라, 나는 이리로 갈께"
아쉬운 듯 머뭇거린다.
"그럼 저기 벤치에 5분만 더 앉아있다 갈까?"
"네"
벤치에 앉으려 하는 순간 얼굴이 차가와진다. 머리 위로 무언가 떨어진다.
물이다. 그건 빗방울. 정확히 오후 4시였다.
툭 툭 .. 투투툭…
느끼지도 못할 듯 오던 빗방울이 순식간에 거세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되면 움직여야 한다.
"가는게 낫겠다"
우리는 앉지도 못하고 일어선다.
집으로 가는 길은 그리 가깝지 않았다.
비가 더욱 거세졌기 때문이다.
가죽자켓을 뒤집어 카메라 위에 얹었다.
Verb 의 커피도 그대로 들려 있다.
머리위로 떨어지는 물은 금새 안경을 채우고 내려와 셔츠까지 적셔버린다.
서울, 어느 여름날 오후의 소나기가 생각났다.
너무도 후덥지근하여… 비까지 뜨거웠던 날.
파리 루브르궁 아치로 들이치던 비도 기억난다.
21번 버스를 기다리며 센 강 옆 어디서 서성거렸는데
싸늘한 잿빛 파리하늘이 그렇게 그리울 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거리 처마아래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폭우가 된 빗 속을 걷는게 이상한가보다.. 하지만
우산도 모자도 없으니,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비다.
문득 머릿속에 스치듯 걱정이 밀려온다;
‘비에 맞지는 않을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똑똑하니까,
이제는 자유로울테니까,
혼자해도 될 만큼 강하므로.
아득히 머릿속으로 Jeff Lynne의 음성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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