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갈등
책 준비로 인해 수개월간 가지 못한 암실을 가기 위해 지난 주부터 거의 매일 학교에 전화를 했다.
전화를 하지만 아직도 한 번 가지를 못했다.
전화를 하니 다행히 오늘은 밤 9시까지 하는 날이라고 한다.
오후에 여러가지 메일을 정리하고 답장하니 오후 5시가 되었다.
그런데 나의 고양이 클로이가 아프다.
내가 아픈건 참으면 되는데, 말도 통하지 않고 여건도 좋지 않으니 참 답답하다.
게다가 다른 두 고양이들은 클로이를 괴롭히기도 한다.
클로이는 신장이 안 좋은지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온다.
화장실에 가지 않고 다른 곳에 일을 본다. 찾아보니
이는 감염되지 않기 위해 깨끗한 곳에 일을 보려 한다는 것이다.
자기 몸을 청결히 하여 살겠다는 암코양이가 사랑스러웠다.
나는 하얀 백지를 깔고, 20분마다 계속 그것을 갈아주고 있다.
싱크대 위를 보니 설겆이할 것들이 쌓여 있다.
'저 위를 올라가서 그렇게 된건가?'
서랍장에 쌓인 120롤의 필름들이 숨 쉬기 괴롭다는 듯이 나에게 불평을 하고,
그래서 내 마음도 요즈음 급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 정도면 책 한 권이 나올 수 있는 양이 아닌가?'
잠시 고민했다.
처음 사진을 시작했던 때를 기억해본다.
내가 사진을 했다면 나는 그 때 사진을 하는 줄 몰르고 한 것이다.
나를 단지 자신을 찾으려 한 것이었다. 찾지 않으면 죽을 판이었다.
'열심히'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성실'은 아직 운명에 몸을 다 던지지 못한 자들의 변명이라 생각했다.
열심히하여 아티스트가 되고 했던 건 더욱 아니었다.
그러기에 나는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최초 '사진을 2년만 하겠다' 생각했던 것도 어쩌면
이러한 틀에 얽매일까라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리라.
기적과 같은 여정으로 자유를 얻었는데,
일은 영특하여 나를 너무도 잘 속인다.
무엇을 증명하게 만들려 한다.
증명하기 위하여 보여주어야 하고, 증명하기 위해 성공해야 한다.
아티스트의 생활을 하며 머리 쓸 일이 없었는데 나는 어느새 다시 머리를 쓰고 있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오늘 암실을 가는 대신 설겆이를 하기로.
가방을 내려놓고 음악을 틀고는 어둠속에 서서 하나씩 깨끗히 닦아 내고 물기를 털었다.
기분이 좋았다.
나의 공간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클로이를 4월의 고양이로 지정하였다.
(나는 매달 Cat of the month를 정하는데 4월은 특히 선정에 시간이 걸렸다.)
나의 사랑이 모자랐다면 지금이라도 더해 주고 싶다.
마음이 편하다, 아주 편해졌다.
고민이 사라졌다. 이런 자신이 대견스러워졌다.
내 얼굴 바로 옆에 나만이 숨쉴 수 있는 5차원의 공간이 다시 나타났다.
자유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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